영화 <미안해요, 리키>

2020. 2. 19. 23:28보고 듣고 생각한 것

켄 로치 감독의 전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너무 인상 깊게 봤기에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부랴부랴 예매해서 봤다. 개인적으로 전작이 더 좋긴 했지만 <미안해요, 리키>는 최근 떠오르고 있는 긱 이코노미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경제 위기로 인해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한 리키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택배 기사 면접을 본다. 겉보기에는 택배 회사에 고용된 것처럼 회사가 정한 규칙을 따르고, 지시에 따라 물품을 배송하지만 모든 택배 기사는 택배 회사와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다. 차량도 회사에 돈을 내고 빌리거나 직접 구매해야 하고, 쉬기 위해서는 대체 기사를 알아서 구해야 한다. 그래도 열심히만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리키는 큰 맘먹고 차량을 구매해 택배 기사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리키가 꿈꾼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에 14시간씩 주 6일을 근무해야 했다. 게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명목상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회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벌금을 요구한다. 그렇게 리키와 리키 가족의 삶은 조금씩 망가져간다.

 

한국 제목은 ‘미안해요, 리키’이지만 사실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다. 국내 제목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담기지 않은 것 같아 너무 아쉽다. 나는 원제의 You가 리키 한 명이 아니라 리키 가족 모두를 지칭한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했던 선택들이 뜻하지 않게 가족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는 결과로 돌아오고, 가족들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그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Sorry We Missed You’는 부재중인 고객의 집에 남겨놓는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리키와 리키 가족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인물 중 나는 리키의 아내인 ‘애비’에게 유독 몰입이 되었는데,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애비가 겉으로는 차분하고 강해 보여도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비 역시 리키와 마찬가지로 제로 아워 계약을 맺고 일하는 요양보호사다.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늘 진심으로 대하지만 제대로 된 수당을 받을 수도 없고, 리키의 차를 사기 위해 중고차를 판 뒤로는 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일은 더 고되다. 그 와중에 사춘기인 아들은 계속 사고를 일으키고 리키는 늘 감정적으로 아들을 대한다. 영화를 보면서 속으로 ‘아들… 너… 적당히 해라…’, ‘리키, 너만 일하냐! 화 좀 참아라!’를 몇 번이나 외친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던 애비가 못 참고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지만, 이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리키 가족이 직면한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키 가족의 이야기는 결국 모두의 이야기다.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있지만, 노동자를 보호해주는 제도는 아직도 예전의 것에 머물러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실하게 일해도 절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제는 경제발전을 외치며 앞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발전한 만큼 그동안 놓친 것은 없는지, 진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뒤를 돌아볼 시간이라고 생각한다.